기록관리 전문기업은 ‘기록관리’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

[2025년 한국기록학회 추계학술대회] 지속 가능한 기록생태계를 위한 작지만 큰 이야기들
발표3. 안대진(아카이브랩)

1. 서론

창업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공공기록물법이 제정된 초기에는 새로운 수요를 맞추기 위해 전문업체들이 생겨났다. 25년이 지난 지금, 시장의 파이는 큰 변화가 없지만 요구는 다변화되고 있다. 도서관과 박물관 등 기억기관, 문화예술기관, 지역의 기록화 사업, 민간과 기업의 기록 저변이 넓어진 건 사실이다. 그 동안 작은 스타트업과 1인기업들이 등장했고 타 분야의 업체들도 유입되어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시장이 너무 작다 보니 전문기업으로 성장하거나 독자 서비스로 경쟁하기 어려운 열악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오늘은 업계의 현실을 공유하여 좀 더 건강한 기록 생태계를 논의할 때 보탬이 되고자 한다. 전문업체 종사자들 몇 분과의 유선 인터뷰를 통해 내용을 종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발표자의 제한된 경험에 기반하니 참고 바란다.

2. 기록관리 비지니스 모델의 현실

국내 기록관리 업체들은 정부나 공공기관의 학술연구, 정리와 DB구축, 아카이브시스템 신규개발 등 부가가치가 낮은 용역을 주로 수행하고 있다. 독자 솔루션이나 서비스 등 고부가가치 영역은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 H,I,J 등의 규모 있는 전문업체들도 기록관리와 관련된 모든 영역을 커버하고 있다.
기록관리(RM) 소프트웨어는 공공도 기업도 수요가 없다. 공공은 표준RMS 때문이다. 기업들은 경영 측면의 자산관리, 위험관리, 보안 등 핵심 기술을 보호하는 데 더 관심을 둔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기록관리와 결이 좀 다르다.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면 대기업들은 자회사를 통해 직접 개발해서 쓴다. 예외적으로 Microsoft나 ECM 등 해외 솔루션을 고려하는 정도이다.
아카이브(AM) 분야도 공공은 표준AMS로 가는 것 같다. 그나마 민간단체나 지역의 디지털 아카이브에 대한 관심, 사사실 사료관리에서 온라인 아카이브 정도로 호기심이 생긴 대기업들(현대기업, 현대자동차, 현대건설, 삼성전자, 기아자동차, SK그룹) 덕에 RM보다 AM 분야에서 희망의 불씨가 보인다.
사업 영역
A
B
C
D
E
F
G
H
I
J
A,B,C: 스타트업 또는 연구자 1인사업체 (1~3인)
D: 컨설팅 업체 (5~20인)
E: SI 업체 (20~50명)
F,G: 웹 에이전시 (5~20명)
H: 도서관/박물관/아카이브 전문업체 (20~30명)
I,J: 기록관리/아카이브 전문업체 (10~100명)

3.전문업체의 어려움

3.1 소프트웨어 구매안함, 성과주의
우리나라는 유니콘이 등장하기 어려운 구조라 한다. 미국에선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대기업들이 Zoom이나 Salesforce의 제품을 구매해 주지만 한국은 대기업 근처만 가도 독자적인 물류, IT서비스, 광고대행사를 만든다. 삼성전자의 업무시스템은 삼성SDS가, SK는 SK C&C가, 현대자동차는 현대오토에버가 전담한다. 올해 초 현대자동차의 아카이브시스템을 설계했는데 개발은 내부에서 직접 하고 있다. 국내에 기록관리나 아카이브시스템 개발할 업체가 있지만 공공에 납품한 실적은 영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글로벌 브랜드의 솔루션 정도가 되어야 후보에 들 수 있다.
부단한 노력으로 중기업이 되면 부동산이나 정부의 주력사업 자금 확보를 통해 활로를 모색한다. 혹은 능력 있는 CFO를 채용해 투자 받으며 코스닥 상장의 꿈에 빠지기도 한다. 작은 스타트업들은 직원 수를 줄이고 하던 일만 계속 한다. 우리나라 산업 생태계는 스타트업이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정부의 소트웨어 조달정책도 아쉽다. 조달청 나라장터는 물품이나 용역 중심이다. 민간의 소프트웨어를 구매해서 선순환이 이루어지기보다는 매번 새로 만드는 정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이나 벤처나라에서 소프트웨어를 검색할 수 있지만 구매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독자 솔루션을 개발하는 데 수억, GS 인증에 수천만원 수개월이 소요된다. 판매가 잘 된다면 기꺼이 1-2년 투자하겠지만 어렵게 등록해도 결과가 안 좋을 걸 알기에 업체들은 쉽사리 도전하지 않는다.
독자 소프트웨어의 판로가 없으니 공공이 발주한 R&D나 직접개발 사업에 참여하게 된다. 발주기관은 50프로 이상의 라이선스를 요구한다. 참여업체의 노하우를 가져다 본인의 성과로 만들려 한다. 이런 식의 공공 주도 개발 결과물들은 완성도가 낮다. 라이선스 문제로 쓸 수 없는 계륵이 되기도 한다. 실력 있는 업체는 이런 조건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수준 이하의 업체들이 영업력으로 시장을 장악하기도 한다. 공공이 기술력을 갖출 필요는 없다. 좋은 솔루션이 나올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 주면 된다. 민간의 기술을 정당하게 사용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3.2 법.절차 중심의 기록관리 체계
법.절차 중심의 사고방식도 문제다. 기록관리는 업무에 도움을 주려는 건데 현장에선 법과 절차에 갖혀 창의적인 접근을 못 한다. 해외의 표준이나 사례를 우리 실정에 맞게 해석하여 적용하지 못한 채 고착화되다 보니 비효율은 점점 배가된다. NEO가 대표적이다. 우리 전자기록관리론 책의 절반 이상은 학생들이 안 배우면 더 좋을 것들이다. 국가기록원에서 개발한 기록관리시스템 교육 자료에는 전자기록 강사인 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연계인수, 기관간인계, 공동형인계인수, 공개재분류, 접근범위재분류, 전자서명장기검증, 디렉토리로 구조화된 패키지 등 용어도 어렵고 불필요해 보이는 것들 투성이다.
그동안 우린 이런 걸 알아야 대화가 되는 줄 알았다. 이런 외계어 사용은 IT와의 소통을 방해할 뿐이다. 클라우드RMS, DB통합, 저장소 공유, 논리적 이관 등 그동안 대단한 것처럼 얘기했던 것들은 획기적인 변화가 아니다. 온프레미스에서 클라우드로 프레임워크를 갈아타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들이다. 세대교체도 안 되고 있다. 자료관시스템 하던 사람들이 이런 걸 주도했다.
3.3 공공클라우드 보안장사와 보신주의
정부, 공공기관 등 공공부문에서 정보시스템을 만들면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공공클라우드(G클라우드)를 사용해야 한다. 용기있는 기록연구사가 작은 예산을 끌어모아 디지털 아카이브를 만들었는데 웹서버 호스팅비 월 5만원으로 운영하던 시스템을 월 200만원 공공클라우드로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다.
“행정기관 및 공공기관 정보시스템 구축.운영 지침”[시행 2025. 1. 2.] [행정안전부고시 제2025-1호, 2025. 1. 2., 일부개정] 제8조(보안성 검토 및 보안관리)에 따르면 행정기관등의 장은 정보시스템을 신.증설하는 경우 「국가 정보보안 기본지침」 제14조부터 제19조까지에서 규정한 보안성 검토를 이행하여야 한다.
국가정보원의 보안성 검토를 받으라 해서 공공클라우드 업체와 상담을 하면 2~3백만원짜리 견적서와 인프라 구성도를 받게 된다. 과감하게 옵션을 낮추려 해도 매니지드 서비스나 이중화 가상화 등 필수 옵션만 1백만원이 훌쩍 넘는다. 혹시라도 사양을 낮게 했다가 보안성 검토에서 떨어지면 내가 그 책임을 져야 하니 VPN, TMS, WAF 관제서비스를 다 넣어 월 3백만원 견적서를 만들게 된다. 우스운 사실은 아마존 웹 서비스(AWS)의 월 5만원짜리 EC2 서버에 한 번도 보안 이슈가 없었다는 것이다. 비전문가 기관장과 공무원들의 보신주의가 이런 결과를 낳았다.
3.4 허울뿐인 사업, 기록을 다루지 않음, 조직문화
국가 R&D나 ISP, 마스터플랜, 기본계획, 각종 학술연구는 점점 참여하지 않게 된다. 공공의 사업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접근보다는 적당히 문제 안 생기는 게 중요하다. 담당자나 상급자의 입맛에 맞게 결론이 난다. 중장기 계획에 따르기보다는 일회성인 경우도 많다. 열심히 만들어낸 결과물이 사업 끝나면 잊혀지거나 잘 쓰이지 않다 보니 효능감이 낮다.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은 효능감이 있다. 의미있는 걸 만들어내는 것이고 기술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창의적인 시도를 하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이 포함되므로 부가가치도 높다. 다만 업체가 가장 고생하는 사업이다. 다들 디지털 아카이브를 꿈꾸지만 같이 일해보면 기록을 제대로 들여다 본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도 현업에서도 기록을 직접 다룰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조직의 핵심 기록이 무엇인지, 어떤 기록을 사람들이 좋아할지에 대한 감이 생기지 않는다. 건 제목을 달아 보거나, 컬렉션을 기술하거나, 기록 검색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으니 기술적인 디테일을 놓친다. 결국 제한된 사업 기간에 껍데기만 만들고 내용물이 부실한 상태로 마무리된다. 정작 중요한 기록 자체보다 상급자나 IT부서의 의견, 자문위원이 누구인지 등 부수적인 데 시간을 허비한다. 지난 10년간 이런 데 허송세월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역량은 한층 향상되었을 것이다.

4.기술 생태계 개선을 위한 제안

4.1 국가 차원의 상생하는 산업 생태계로 개선
정부의 공공조달 역량을 중소기업 진입 기회에 활용
제품인증 및 조달절차 단순화 (1억 이하 공공클라우드 비적용 등)
정부가 공공사업용 소프트웨어 개발 공모하여 중소기업 주도로 설계.개발 유도
공공 서비스 플랫폼을 모듈화한 후 API 공개하여 중소기업이 모듈을 제작하여 끼워넣게 허용
새롭고 도전적인 솔루션을 제시한 중소기업이 수혜 받도록 혁신성 위주 조달
공공조달 혁신 사례
유럽연합의 “Strategic Buying for Europe”
조달을 단순히 비용 중심이 아닌 미션 지향적 관점으로 전환하자는 주장
공공 부문의 정책 목표(예: 디지털 전환, 친환경, 지역 균형 발전 등)를 조달 기준과 연결하고, 중소 기업이 그런 미션 중심 조달 기회에 적극 참여하도록 설계
상업화 이전 조달(PCP) 강조 - 유럽연합은 업체의 소프트웨어 개발을 초기부터 지원하여 공공기관과 연결해 주는 혁신적인 공공조달정책(PCP: Pre-Commercial Procurement)을 운영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이 정책을 통해 회원국들의 공공분야 기술적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한다 그 중 FP7-ICT 프로그램은 개발업체의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개발을 초기부터 지원하고 공공조달 형태로 판매를 보장하며 나아가 공공 표준이 되도록 장기간 지원하고 있다. (안대진. 2019. 기록시스템의 오픈소스 전략 연구. 박사학위논문)
미국 연방정부의 “Federal Source Code Policy”
이미 자체 개발한 소스코드를 여러 부처가 공유·재사용하도록 함
공공 부문에서 동일한 기능을 여러 업체가 중복 개발하지 않게 유도
4.2 민간 솔루션 홍보 및 시범서비스
국가기록원이나 전문가협회 등이 국내 전문업체들의 제품, 서비스를 소개하고 좋은 제품이 드러나도록 유도
훌륭한 제품일 경우 시범 도입사업 추진 및 가격협상 중재
자격 미달업체나 불량제품.서비스 모니터링
4.3 산관학연의 전문성 확보
학교/연구자: 범용 지식과 용어 사용. 컴피턴시 영역 체계화. 협회/단체와 교육 협력
현장 실무자: 도메인 지식 축적과 확산, 기록을 다루는 핵심업무 용역의존도 낮추기
정책기관:
현장감 + 생태계 우선정책 고민
해외교류파견 : 해외 기관과 몇년간 교류파견을 통해 실무를 깊이 이해한 후 국내 확산. 우리 프로세스가 우물안 개구리가 아닌지 제대로 된 평가 필요
협회/학회: 출판과 재교육에 집중
전문업체: 기본에 충실한 전문가 집단 지향, 기술조달 소스 다변화←바이브코딩,해커하우스, 고인물 탈피
4.4 AI로 인한 위기와 기회
1인 유니콘 - 샘 알트만은 얼마 전 세계지식포럼에서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해 수많은 도구가 나오고 있다”면서 “이제 1인 창업자가 10억달러 기업가치인 유니콘을 쉽게 만드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어떤 인재가 살아남을 것’이냐는 넬슨의 질문에 “현재 인공지능을 갖고 무수히 많은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결국 다양한 실험을 하는 국가들과 기업이 성장하고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매일경제)
소비자 지향적 - AI는 모든 산업을 바꾸고 있다. 교육에서부터 미용, 의료까지 거의 모든 산업 영역에 AI가 적용돼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하고 있다. AI가 적용된 산업들은 과거보다 더 소비자 지향적으로 오디언스에 최적화된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 (미디어 이슈 & 트렌드 vol.55)
AI 검색의 약진 - ChatGPT와 AI 검색 도구들이 구글의 검색 독점 지위에 실질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분석이 확실히 나타나고 있다. 스탯카운터에 따르면, 2025년 들어 구글의 시장점유율이 2015년 이후 처음으로 90% 아래로 떨어졌다는 것이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StatCounter)
AI, 새로운 기억 인프라가 된다 - <Memory Studies Review 1권 2호>에서 연구자들은 AI가 새로운 기억 인프라가 될 거라 말한다.집합적 기억을 저장하고 전달하는 전통적 인프라(책, 기록물, 도서관, 아카이브 등)가 AI 기술, 특히 대형 언어 모델(LLM)과 같은 생성형 AI로 대체되거나 보완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AI는 과거의 사건, 기록, 지식을 재구성하여 사용자와 상호작용한다. 그리고 대규모 데이터 기반으로 집합적 기억을 통합, 분석, 확장하여 개인화된 정보를 제공한다. AI는 이제 집단 기억의 ‘디지털 트윈’이 되어가고 있다. AI는 인간의 집단 기억과 상호작용하면서도 기존의 아카이브 방식과 달리 데이터를 능동적으로 재구성하고 새로운 기억의 형태를 만들어 낸다. AI가 만들어내는 ‘인공 집단 기억’은 인간의 기억과 뒤섞여 진정성, 대표성, 윤리성 등의 문제를 촉발시킨다. 이승만이나 5.18, 4.16, 이태원참사, 윤석열에 대해 ChatGPT가 어떤 집단기억을 만들고 확장할지 모른다.
AI, 도구가 아닌 동반자 - 지금까지는 자동분류, 요약, 메타데이터 추출 등 부분적인 업무 개선의 도구로 AI를 바라봤다.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기록 패러다임을 바꾸는 동반자가 아닌가 싶다. 지금 전문업체들은 새로운 기회를 위해 혹은 뒤쳐지지 않기 위해 AI의 기술수준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LLM이 아카이브를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이 가볍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기록과 아카이브의 주도권이 AI나 다른 산업으로 넘어갈지, 퀀텀 점프의 기회가 될지는 우리 하기에 달렸다.
그림5. ChatGPT가 생성한 20세기 활동가 목록 (논문 221쪽, 표 1) ChatGPT는 유명한 활동가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넬슨 만델라, 마하트마 간디, 로자 파크스, 말콤 X를 반복적으로 언급했다. 반면 덜 알려진 활동가 목록은 매번 달라졌다. AI는 훈련 데이터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패턴을 기반으로 응답을 생성하며, 이 과정에서 지배적인 역사 서술이 강화된다.
그림7. AI로 구현한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홀로그램과 대화하는 관객들 - https://sfi.usc.edu/dit
그림8. AI로 구현한 홀로코스트 생존자 Pinchas의 홀로그램과 대화하는 화면 - https://iwitness.usc.edu/dit/pinchas